세월 파시온SEWOL-Passion 행사를 주관하면서
글쓴이 : 이광 Kunstverein64 e. V 대표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가자, 무슨 마법에서 풀린 것 처럼 지난 3월 23일 세월호가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참사 3년만입니다. 1073일 동안 깊은 바다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삼킨채 가라 앉았던 선채가 인양되는 모습은 오랜 기다림의 시간에 비해 오히려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올라올 수 있던 배가 왜 3년이라는 시간을 불가능한 일인것 처럼 우리를 낙망하게 만들었던가요? 세월호는 참사 당일 부터 지금 까지 „왜“라는 커다란 물음표를 달고 다니며 한시도 우리를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물든 사회구조에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오늘의 한국사회가 과연 무엇을 간과하고 있었을지 모두 깊이 반성하고 돌아볼 수 있던 자성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비극적 대참사는 한국 역사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전쟁. 학살.다른 모습들로 나타나 무고한 이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넣고, 한국사람이라면 거의 다 공감하는 „한“이라는 정서로 사뭇히면서 유전되어 왔습니다. „한“이라는 정서를 내포한 패배주의를 세대를 걸러 유전하게 된지는 얼마나 오랜 역사를 갖고 있을지 돌이켜보자면 제일 먼저 발을 잡는 사건이 세월호입니다. ‚왜 아이들을 다 구할 수 있었는데 구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생각해 보면 ‚참사‘라는 것은 최악의 운명적 구조를 갖고 있기에 확률적으로 악재만 맞아 떨어진 대형사고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애써봐도 돌이킬 수 없는 패배와 깊은 좌절을 안겨줍니다. 그런 치명적인 트라우마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망각하거나, 사실을 왜곡하면서 단편적 기억에 의존한 단절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일종의 정신병인 것입니다. 한국 전쟁과 이산가족, 빨갱이로 몰려 죽음을 당한 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들, 제주 4. 3. 사건의 무고한 2만 5천명의 희생자, 광주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세월호의 희생자. 참사를 목격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역사가 우리 근대사입니다. 이 처참한 기억을 한반도는 분단으로 간직하고, 친일내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분열이 되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지 70여년입니다. 과연2014년 4월 16일도 잊을 수 있을까요?
이 날 세월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영화도 아닌 현실에서 여객선의 침몰을 생중계로 바라보던 전 국민의 노여움과 슬픔을 세월호를 인양했다는 걸로 씻어 줄 수 있었을까요? 이 사건을 시점으로 한국사람 대부분이 집단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세월호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들의 „살려달라“는 비명을 전국민이 함께 들었으며, 이 비명은 비수가 되어 우리의 가슴에 깊이 박혔고, 마지막으로 부모들에게 보내온 문자와 영상들은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바이러스처럼 우리 모두의 가슴에 공포와 원한을 남겼고, 집단 트라우마에 걸린 증상을 보였습니다. 이대로 바닥까지 가라앉은세월호처럼 무력한 늙은사회로 침몰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된 것입니다. 숨을 쉴 수 없는 사회, 질식할 것 같은 공포는 도처에서 억압이라는 형태로 사회 구성원의 소통을 막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폐쇠된 구조속에서 정의를 꿈꾸는 사람들을 온갓 비열한 수단을 동원해 위협하고 댓가를 치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무력감이 비정상이 정상을 대신하는 사회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있는 구조에서 버림받은 99.9%서민들의 삶은 상위 0.01%를 위해 희생을 강요당하고, 경제성장을 빌미로 인간의 존엄을 파괴당하는 악순환을 되풀이 했습니다.
부모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자식을 앞서 보내는 것이라 합니다. 세월호의 유가족들은 자식과 생이별을 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근대사에 무력하게 약자로 숨겨졌던 피해자의 모습과 결별하고, 개인의 슬픔 차원을 떠나 공동체의 문제로 확대시켰으며, 사태의 해결에 모든 것을 걸고 싸웠습니다. 정말 목숨을 다 내놓고 싸운 것입니다. 더이상 잊거나 왜곡하지 않고 „우리“라는 공동체에게 함께 해결하자고 호소하였습니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의 „순결한 죽음“때문입니다. 이 순결한 죽음은 그 어떤 가치와도 바꿀수 없는 „인간의 존엄“으로 이 최후의 보루마저 포기하면 우리가 공동으로 지킬수 있는 살아있는 가치는 더 이상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아픔을 공감한 수많은 사람들이 노란배,노란 나비를 접고 노란 리본을 단 채 유가족들과 함께 광장에서 거리에서 함께 울고 소리치며 노래하며 순결한 아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이와중에 우리는이와는 정반대로 몇 터무니없는 웃음을 보았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발표하던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터져나간 웃음, 장례에 참석한 박 대통령의 웃음은 고통속에 죽어가던 아이들을 두번 죽음으로 몰고 간 살인행위였습니다. 우리는 아직 이 실체를 다 밝혀내지 못했지만, 이러한 살인마적인 인격들이 유가족을 탄압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들을 목도하였습니다. 유가족들에게 물대포를 퍼붓고, 강제 연행을 하고, 폭력과 인권 유린을 하는 등 이미 죽은 사람들을 몇 번이고 죽이는 인륜을 벗어난 범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3년간 유가족의 이 외로운 싸움은 길거리에서 단식, 삭발, 오체투지로 우리의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제 기능을 하기엔 너무 부패하고 마비된 한국사회는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했습니다. 혹자는 이제 세월호는 그만 좀 얘기해라! 지겹다!고 유가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습니다. 지난 3년간 세월호 인양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과 투쟁을 해왔으며,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탄압과 기만을 해왔던가를 생각해 보면 진짜 이 사건의 주체는 무엇이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의 배후는 누구일까요? 가혹한 세월 3년은 결국 진실은 이긴다는 걸 보여주는 과정이였을까요?
지난2016년 가을부터 드러난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는 왜 „헬조선“이라고 우리 스스로를 칭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증명하는 거대한 부패구조가 정체를 드러냈고, 온 국민이 그 규모와 타락의 정도에 충격에 빠졌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고급 공무원 전체가 그 한패이고 깡패조직만도 못하게 운영된 국정농단을 바라보며, 저런 한심한 자들에게 지배를 받아온 우리의 정체성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청와대 근무자 아무도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날의 박대통령의7시간은 알 지 못한다는 말도 안되는 사실만을 토해낼 뿐, 제대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실은 증언하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다 기억하는 이 날의 알리바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 몇 사람들에 의해 재단되고 왜곡되어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에게 침을 뱉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살길만을 모색하는 박근혜. 최순실 일당의 변론은 추하고, 조잡했으며, 더이상 국민들의 동정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힘을 모아 박근혜를 끌어내렸습니다. 우리는 저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말을 보았습니다. 한국 근대사의 가장 영향력 있던 두 인물 이승만, 박정희 시대는 독재자의 딸, 그녀의 무지와 비인격으로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기다림 끝에 배를 뭍으로 올렸지만 아직은 왜 끝난 것이 아닌 걸까? 대답을 할 수 없는 이 망연한 상실감을 회복할 길이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미수습된 시신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 많고, 모든 문제는 행동을 요구하고, 이 행동은 비폭력이라는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진보적 과제를 담고 있습니다. 변화를 이루어내되 평화적으로 개혁한다. 일명 „평화혁명“이라는 개념은 „촛불혁명“이라는 말로 대체하자면, 이미 한국인의 시민의식이 전세계 모든 나라가 부러워 할 만큼 성숙되어 있다는데 이견을 낼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예를 보여준 것이며, 어떤 지도자가 정권을 잡든 박정희 패러다임의 술수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저력을 입증한 것입니다. 이제 맞이할 한국의 지도자는 도덕성의 결여로서는 민심을 다스릴 수 없고, 진실을 말하고 행동하지 않고서는 참혹한 패배를 맞을 것이라는 대국민적 경고이기도 합니다. 헬조선의 희생자 세월호 아이들이 꿈꾸는 나라는 어느덧 한 발 가까이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미술계에서 세월호를 추념하는 전시와 행사가 지난 3년간 전국 곳곳, 경기도 미술관을 포함하여 수많은 갤러리와 대안공간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최순실이 마음대로 주무르던 문화관광체육부에서 블랙리스트를 작성,예술을 검열하고 작가들을 억압할 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수많은 용기있는 작가들이 나서서 저항 정신을 작품으로 제작하고, 전시하며 대중들과 세월호 사건을 더 긴밀히 심화시키고, 잊지 않도록 환기 시키고, 예술의 언어로 승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 없었다면 이러한 평화 혁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난 가을부터 박근혜의 탄핵까지 세월호 유가족과 거리에서 그 곁을 지킨 사람들은 예술가들이였습니다. 광화문에 텐트를 치고 5개월을 함께 겨울을 난 작가들은 시민들이 동참하는 퍼포먼스와 행사를 주관하고, 대형 촛불, 박근혜를 풍자한 조각상등을 동원하여 시민들이 응집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 주었고, 위트.유머.풍자로 은유된 피흘리지 않은 민중전쟁을 예술의 테두리에서 치루었고 촛불혁명을 주도하였습니다.
작년 2016 베를린에서 쿤스트페어라인 64는 부천의 아트포럼리와 공동주최로 „코리안 방주|Korean Ark „라는 전시와 거문고 산조와 현대무용 퍼포먼스를 통해 한국 사회에 내재된 우울과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행사를 했습니다.
올해 2017년 쿤스트페어라인 64는 세월호 3주기 행사 „세월-파시온| SEWOL-Passion“을 주권회복이라는 모임과 공동주최로 작년에 이어 두번째 세월호 전시를 준비 중입니다.
주권회복이라는 모임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자발적으로 모인 데모 집단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주권회복의 ‚자생‘적 성격이 2016년 11월 부터 광화문 거리를 메우던 촛불 집회처럼 저절로 모인 참여성격의 모임으로, 한국역사를 거꾸로 헤아려볼때 이 자생적인 힘이 우리를 공동체로 연대하게 하고 국가위기에서 지켜주었던 수호신적인 ‚정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역설적으로 역사 패러다임의 전환점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촛불 시위를 할 명분을 제공하였고, 죽음도 두려워 않고 싸울 부모들이 전사가 되어 우리들에게 다가왔다는 것과 우리에게 아직 자생적 힘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에 도화선이 되어 부패권력에 어떤 타협도 없이 싸울 수 있었던 구심점이 된 것입니다.
대통령을 구치소에 보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과거 전두환. 노태우씨등도 구치소에 보냈으며,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도 탄핵을 당한 바 있었지만, 박근혜씨의 경우는 시대적역할이 다릅니다. 박근혜씨를 탄핵하고 구치소에 감금시켰다는 것은 우리 근대사의 낡은 패러다임, 즉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졌던 군사독재와 구한말 일제의 억압에서 연역되고 파생되었던 정치. 사회 구조를 감금한 것이고, 낡은 정치는 더이상 한국 사회를 지탱할 수 없다는 개혁의 물결이 이미 구시대를 몰아내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명제로 죽은 정치에 종지부를 찍고 미래에 „삶의 정치“라는 새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지도자를 선택하는 데 절대적 요건이 „도덕성“,“양심“,“윤리“라는 인류역사의 가장 혁명적인 가치를 우리가 자발적으로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두 동강이 난 반쪽짜리 나라 한반도의 운명은 경제성장이 아닌 이 „도덕적 양심“의 회복에 달려 있습니다.
한 번 되집어 보자면, 참으로 많은 일들이 박근혜 집권시기에 집행되었고 일어났습니다.
나열할 과오적사건들은 지면이 모자랄 정도이며 박근혜정권의 초월적인 권력구도는 조폭조직 이상으로 악날하고 부패했습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린 생명들을 수장시킨 세월호가 제일 큰 참변이며, 국정교과서를 집필하고 역사를 왜곡하려던 시도, 제 아버지 박정희 기념관과 동상 사업을 통한 독재자의 영웅주의를 세뇌 시키려던 시대착오적 시도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이후 공들여 해오던 평화통일 정책인 개성공단을 하루아침에 철수를 강행함으로서 남북한 화해의 길을 폐쇄하고 북한의 도발을 가중시키고 사드배치를 강행하여 중국과 미국의 갈등에 빌미를 제공하는 우안적 외교로 국민의 안위를 함부로 위협하는사태를 초래하고 , 위안부 할머니들을 배제한 상태로 일본의 입장에서 맺어진 위안부 합의 건을 통해 더 심각한 국내 분열를 야기한 점, 동북아시아 화해 분위기를 갈등과 분열로 조장한 것….
그리고 최순실일가과 박정희 시대 때부터 비자금을 빼돌린 30년의 역사, 국민들을 이만큼 농단했음에도 ‚잘못한 적이 없다.‘ ‚사심이 없다.‘… 등의 무책임한 발언과 기만으로 하야를 요구 했던 국민들의 도덕적 요구에 정면으로 대결을 벌여왔습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변호인단을 구성해서 어떻게 하면 빠져나가 볼까 하면서 잔머리를 쓰고 무죄를 가리기 이전에 모든 책임을 지고사과하고 물러났어야 할 상황에서 자기 반성과 도덕적 양심에 근거한 판단없이 온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한 채 청와대만 지키고 국가 안위도 아랑곳 않고 시간을 지체하다가, 결국 국민들의 손으로 쫒겨나는 대망신을 겪으며 물러난 것입니다. 대통령의 이런 지저분하고 어리석은 대처들이 결국 혁명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세월호 아이들이 죽어가는 동안 미용내지 올림머리를 하는데 시간을 쏟을 만큼 인간으로서의 판단력이 부재되어 있었기에 온국민이 끌어 내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유일한 사람이 박근혜씨 아닐까 생각됩니다. 기존의 혁명이 민중들이 생활고와 사회 시스템 개혁을 요구했다면, 이번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구치소 감금이 내포하는 상징적인 의미는 앞으로 뽑힐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로 ‚도덕성‘을 요구하는것이 될 겁니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앞으로 잊어서는 안돼는 의무적 당위적인 무게와 명분을 부여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가치라 하더라도 생명의 존엄성위에 설 수 없으며,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진실하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국가적 파탄만 불러 온다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부터 3년간 유가족들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 이 불합리와 기득권의 억압에 맞서 최전방에 선 전사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고, 참여 정신을 각성 시키고 „공동의 선“이라는 공동체로서의 의무와 반성을 이끌어낸 피나지 않은 전쟁을 치르어 냈고 아직도 최전방에서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용기있는 예술가들과 예술단체들이 광화문에서 ‚블랙리스트‘, ‚궁핍미술관‘ 이라는 전시행사를 주도하여 이시대의 문제를 제기하고 박근혜정부의 최대 부역자 였던 문체부를 비판하고 박근혜의 탄핵까지 샘솟듯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길거리에서 겨울을 나는 고행을 마다않고 앞으로 올 역사를 새로 쓸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행했습니다. 희생없이 이 역사의 바퀴가 방향을 바꿀 수 있었을까요?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답게 살사회를 물려주겠다는 뼈를 깍는 다짐들이 모여 벼랑으로 마구 굴러가던 파멸의역사의 바퀴를 멈추게 하는 기적같은 일이 이 겨울 2016년에서 2017년에 일어났습니다.
촛불을 든 사람 하나하나가 기적의 실체입니다. 촛불을 든 이들은 미래에서 보내온 전령들로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에 도래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의 전령사인 것입니다. 개인을 넘어 타인들과 함께 살아갈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자발적으로 연대한다는 것 이것이 기적입니다. 여기에는 더 잘살겠다는 경제 성장의 목표가 아닌 사람답게 살겠다는 윤리의식의 적극적 구현이 목적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과감히 권력과 부를 담보로 아이들에게 과다경쟁을 부축이고, 꼰대들이 고질화시켜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에서 타인을 짓밟아야만 내가 살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생존 방식에서 철저히 자유로와 져야 할 겁니다.
2017년 4월 16일 은 유럽에서는 교회력으로 가족 명절인 부활절입니다. 부활전 기간은 수난의 시기라고 예수를 고문하고 십자가에 매달기까지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고행의 시기로 이 사순의 시기는 절제와 금욕을 권하는 교회 풍습이 있습니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올 해는 예수가 죽음에서 깨어나는 부활절과 세월호 참사 3주년이 공통의 날이기에 전시 제목 ‚세월 파시온‘은 고난의 세월을 이기고 도래할 희망이라는 상징을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을 부활이라는 승리의 의미지로 탈바꿈시키기에 앞으로 남은 과제가 너무나 많습니다. 진정 죽어야 했을 죽음의 대상은 아이들이 아닌 한국사회를 송두리째 일부 권력의 노예로 바쳤던 기득권들입니다. 일제의 친일 청산이 아직도 우리에게 시급한 과제 인 것이 바로 이들이 기득권입니다. 그 들은 이 순간에도 제 자리를 다 지키고 있으며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꾸고 본인들의 잘못을 은폐하고 도색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무리들을 청산하고, 그들이 억압하던 서민들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도래하려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들로 맞서야 할까요?
여태까지는 기득권에 도전하면, 가차없이 배제시켜버렸습니다. 대화와 타협이 없이 기득권의 이익과 존속에 위배되는 사람들은 잡아가두고, 때리고, 죽이고… 국정원의 숫자가 남한 군인의 절반에 해당하고, 재벌기업들이 어버이 연합등 보수 단체를 후원하고, 댓글을 조작하고, 언론을 조작하고 , 진보를 빨갱이로 둔갑시켜서 모든 분열을 조장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모든 노력을 무산시킨게 사실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세월호의 희생자들의 주체와 배후는 이 기득권 세력입니다. 앞으로 남은 한국 사회의 변화와 개혁의 가장 순수한 주체는 이 억울하게 희생된 304명이며 우리는 절대 유가족이 다시 거리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 당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세월 파시온 전시 정보
일시: 2017.4.15- 4.29
오프닝 이벤트와 공연:2017.4.15 오후 7시
장소: PG Berlin Galerie_ Uhlandstr. 170, 10719
쿤스트페어라인 64 |Kunstverein64e. V는 베를린에 설립한 비영리 국제 예술 협회로 한국과 독일 나아가 동서양 예술교류를 통해 국제 사회의 평화에 기여하고 예술가들의 인권을 수호하는데 그 역할이 있다.
KV64협회가 추진하는 대표적 4개의 사업
- Halb+Halb=Korea| 반+반=한국 : 남한.북한. 독일 분단국가와 분단국가였던 3개국 나라의 예술 교류와 평화 증진을 도모하는 프로젝트로 분단 70여년의 한국이 문화적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 한 나라 국민이라는 동질감을 회복하고 화해의 분위기를 예술의 영역에서 추구 한다.
- Trostfrauen|위안부 :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성노예로 끌려가 위안부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와 화해를 위한 프로젝트
- Projekt X|프로젝트 X: 다문화주의적 관점에서 각 나라의 고유한 예술과 가치를 교류하면서 공존의 가는성을 모색하는 교류 프로젝트로 작가와 큐레이터, 기관들이 네트웍을 만들고 다름을 이해 할 수 있는 소통의 마당을 형성한다.
- Jeong Seon Projekt|겸제 정선 프로젝트: 한국 전통 문화의 고유성과 아름다움을 서양에 소개하며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동양철학과 동양미의 미래적 가능성을 키우고 가꾸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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