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Gyeomjae Jeong Seon’ by Sungweon Kang

 

‘’서양화‘라는 범주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정선, 독일에서 그리다’는 독일작가단체협회;쿤스트베어라인64 Kunstverein 64 e.V.;이 연속적으로 기획하는‘겸재정선 프로젝트’의 첫 전시로 열렸다. 이 단체를 대표하는 3명의 작가(Sebastian Ludwig, Prof. Udo Dziersk, Kwang Lee)들은 한국 전통미술을 상징하는 겸재정선의 작품들이 저들에게 미치는 수용미학상의 지평들을 우선 탐구한다. 이 단체의 목적에 대해 스스로 미학적인 실험을 하면서 한국과 독일미술 교류의 상호간의‘이해와 영향’의 의미와 전망을 타진해본 전시이다.
정선의 화업에 기댄 오늘날의 세계적 차원에서의 한국화란 어떨 수 있는가를 보고자 했다. 이러한 영향미학적 작업실현의 폭과 깊이를 최대한 확대해보기 위해, 독일 미술 전통에서 성장한 이들 작가들 눈에 비친 겸재정선을 예술적으로 제대로 이해, 평가해보기 위해, 2년 가까운 기간의 연구조사를 병행하면서 작품을 준비했다고 한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그 연구의 진지함과 고민들이 묻어난다.
이들 중 독일작가들은 겸재 정선의 작품에서 그들이 느끼는 미감을 어떻게든 자신들의 원래의 작업방향이 추구하는 미감과 정서를 흔들지 않은 채 매개해보려 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자신의 원래의 미학적 지향점을 보존하되, 겸재 정선 그림에서 각자가‘매력’으로 느낀 부분들을 전경으로, 그들이 이해한 한국화의 화면구성 원리를 미의식의 후경으로 두는 방식을 썼다. 우도 저스크 교수 직품은 본래에도 비교적 동양적 미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는 사물이 던지는 메타포를 미학적으로 재해석하고 변용하여 그림 속 의미망으로 구축한다. 그런 그에게 가장 매혹적으로 다가간 정선 그림 속 메타포는 수목의 미적 기능과 표현특징이었던 것 같다. 그는 수목을 자신의 한국화 수용에서의 매개장치로 구성한다. 그래서 정선의 나무들은 우도 저스크 작품 속에서 본래의 그 동양화적 표현특성에 대한 서양화적 표현법상에서의 설명을 확실히 얻은 것으로 보인다. 전통 한국화 나무표현방법이 우도 저스크를 통해 보다 더 확연히 서양화법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코드를 얻은 것이다. 이 점은 아마도 그가 미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 학생들에게 한국화를 설명하면서 그 기법에 대해 설명을 하게 된다면, 예를 들어, 한국화의 나무표현은 이렇다라고 그려 보였을 법한 그런 도상으로 구체화됐다. 세바스티안 루드비히도 자신이 원래 해왔던 중층적 기표들의 몽타주 기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몽타주가 형성되는 그 배경으로 동양적 미감의 베일을 드리우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원래 지니고 있던 독일적인 강력한 구조적 역동성을 동양적 평상심의 은유들로 몽타주했다. 이 방법은 한국화를 감상하는 그의 시선이 특정한 부분이 아니라, 한국화 그림 전체가 던지는 어떤 미감의 그림자에 더 매료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그는 한국화를 접하기 전에는, 전후 독일 현대미술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화가이긴 했지만, 우도 저스크처럼 작품상에 이미 동양적 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내면에는 사실상 동양적 미감에 끌리는 개인적 성향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번 그의 작품은
매우 고혹적인 방법이 자아낸 아우라로 한국화를 재해석해내고 있다. 이광은 이들중 유일하게 한국작가인데, 오히려 동양과 서양이라는 그림의 구분을 의식하지 않고, 하지만 다른 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표현기질을 그대로 유지하되, 겸재 정선의 바위와 산세 표현기법을 반복해 분석해보면서 정선의 기법을 자신의 표현기법으로 성공적으로 확보해낸 것 같다. 이광의 그림은 다른 두 독일작가들과는 달리, 이들 두 독일작가들 그림들은 매우 강력한 미적 정체성의 창조물들인데도 그 밑바닥 정서에는 어딘가 불안과 외로움의 정서가 배어있는데, 이광의 작품은 언제나 확신에 차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이광의 그림은 여전히 이전처럼 뭔가 해체적임에도 불구하고 정선기법의 자기변용을 하면서도 확신적으로 매우 힘차게
표현되어있다.
이들의 프로젝트에서 돋보이는 점은 동양화/서양화에 구애받지 않는 미술적 태도이다. 굳이 동양화/서양화를 가릴 필요 없이 한국화의‘표현방법’을 한국화의 정신이라 전제하고 한국화의 표현방법들을 분석해 그 중 어떤 것을 한국화의‘자취’곧 역사로 끌어 들여오는 방법이다. 우도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차용’인데, 정선 그림에서 바위 위의 나무를 표현하는 방법이 아름답다고 느껴, 그 부분을 자신의 필치로 재창조해 원래 자신의 그림에 접목시겨보는 방법이다. 한국화의 전통계승이란 한국화 재료를 쓰는 작가들만이 하는 고민이 아니라 한국화단이든 외국회단이든 한국화의 여러 전통 안에서 작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여러 지점들을 작가 자신의 고유 방법으로 해석해 접목시키면 그것으로 이미 한국화의 전통은 이어지는 것이다. 재료로 한국화, 서양화를 구분하는 일에도 일종의 미술정치적 권력과 이해관계가 배경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화는 재료와 받은 기법교육에 상관없이 한국의 작가들 전체의 그림을 일컫는 범주가 되어야한다. 점차 그렇게 되겠지만, 우리에게 이제 오히려 ‘서양화과’라든가 하는 ‘서양화’개념범주는 제도에서 사라져야 하고, 한국미술을 일컫는 한국화라는 규정범주만 남게 될 것이다. 그 중 전통 한국화의 기법들을 차용한 작품들을 통해 면면히 한국화(기존 서양화, 전통한국화를 포괄하는)는 전진하고 계승되는 것으로 인식되어져야한다.